벌써 9주년을 맞은 리디북스. 하지만 본격적으로 브랜딩을 고민을 시작한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전에도 로고, 컬러, 글꼴을 비롯한 기본적인 체계가 있었고 조금씩 개선되어 왔지만, 이 글에서는 그동안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지난 1년간 리디북스에서 브랜딩을 고민한 이야기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브랜딩,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구글에서 ‘brand framework’로 검색해보면 수많은 이미지가 쏟아집니다. 이처럼 브랜드 요소를 설계하는 도구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Mary Jane Braide의 프레임워크가 단계별로 잘 정리되어있고 간결하고 명확하여 이것을 참고하기로 하였습니다.
리디북스의 브랜딩을 처음 제대로 고민할 무렵에는 서비스의 비전, 미션, 전달할 가치가 명확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서비스의 로고나 시각물의 체계가 덜 정리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그림 기준으로 4, 5번에 해당하는 Personality, Visual Identity, Brand Architecture, Story를 구축해나가기로 했습니다.
리디북스 비주얼 아이덴티티 리뉴얼
리디북스 로고 리뉴얼
우리는 먼저 로고를 비롯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리디북스의 기존 로고는 투박하고 오래된 느낌이 들어서 개선이 필요했습니다. 또, 작게 쓰였을 때 글씨 안의 공간이 좁아서 뭉개져 보이고, 워드마크 아래의 책모양 밑줄이 얇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즘 같이 작은 화면이 대세인 모바일 시대에 꼭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새로운 로고는 리디북스가 가진 젊고 혁신적인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시원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 글꼴을 사용했고, 로고를 구성하는 요소는 그대로 유지하여 기존 로고와의 이질감을 최소화했습니다. 작은 크기로 쓰일 때도 또렷하게 보이도록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했습니다. 또 로고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일관성 있게 사용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리뉴얼된 로고는 애플리케이션, 웹사이트, 각종 서식류, 현판에 이르기까지 로고가 쓰인 모든 매체에 순차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서식류는 이후 리디주식회사의 로고로 대체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목표를 브랜드 이미지를 강하게 만드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리디북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기
브랜딩을 주제로 다룬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브랜드 디자인 회사의 사례도 많이 살펴보았습니다. 주로 사용되는 방법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브랜드에서 떠오르는 단어, 새로 담았으면 하는 느낌의 단어를 골라냅니다. 그와 연결되는 그래픽 모티브를 뽑아내어 애플리케이션, 웹사이트, 노트, 명함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랜드 에셋을 재료로 하는 멋진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이 방법론을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사내 직원 인터뷰와 외부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리디북스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골라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로부터 디자인 에센스를 뽑아내었습니다.
아쉽게도 빛을 보지 못한 머그
실제로 이 이미지를 이용해 머그컵도 만들어 보았습니다만 직원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리디북스답지 않다’는 반응이었죠. 다시 키워드로 돌아가서 보니 의문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과연 스트라이프 패턴이 신뢰감을 줄까?’, ‘비비드한 컬러가 친근한 느낌을 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실력이 부족한 건가?’
회사 안에서부터 시작하자
토론 끝에 우리가 시도하던 방법은 그래픽 스타일에만 치중된 방법이었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특정 그래픽 스타일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회사의 개성을 드러내기에도, 공감을 얻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사, 제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스토리를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고, 스타일은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풀어내려면 그러려면 내부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이 공감하고 흥미를 느껴야 자신 있게 확장해 나갈 수 있고, 거기서부터 선순환이 시작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클라이언트는 직원이었습니다.
한 번에 안된다면, 조금씩 해보자
또, 앞선 시도에서 한 번에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선에서 이것저것 많이 던져보고, 직원들의 반응을 살피고, 반응이 괜찮은 것을 확장해본다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 하신다면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은 분일 겁니다. 바로 Lean Startup Process.
Lean Startup Process
린 스타트업은 시장에 대한 가정을 테스트하기 위해 빠른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진화시키는 방법론입니다. 이를 통해 낭비를 줄이고,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MVP를 만든 후에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3단계 사이클을 돌면서 계속 발전시켜 나갑니다.
Lean Branding
우리는 Lean Startup Process를 브랜딩에도 적용해보기로 했습니다. Build – Measure – Learn를 반복하면서 브랜드 에셋을 구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이 좋아하는 것은 남겨서 개선하고, 별 반응이 없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가 증명되면 거기서부터 확장하기는 쉬우니까요. 그제야 뭔가 하나씩 던지기가 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이 안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뭔가 대단하고, 우리의 모습과 100% 들어맞는 정답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었습니다.
린 방법론을 적용한 브랜딩이니 Lean Branding – 린 브랜딩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찾아보니 이미 이를 다루고 있는 책 도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Story, Symbols, Strategy 세 가지 축에서 린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Lean Branding Cycle (출처: leanbranding.com)
브랜드 제품 1: 고객 칭찬
직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리디북스의 모습을 담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이 좋아할 만한 것.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는 매일매일 고객들이 보내준 따끔한 호통과 따뜻한 칭찬을 모두 모아 아침마다 읽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TOC(Tears of Customers)라고 부릅니다. “정말 지극정성 서비스”
“취향저격 도서어플”
TOC 중에서도 칭찬을 낭독할 때면 개발자들의 표정이 한껏 밝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순간입니다. 칭찬이야말로 리디북스의 소중한 자산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스티커, 디지털 사이니지, 배경화면 등으로 만들어 배포해보았습니다. 직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긴, 진심 어린 칭찬을 듣고 기분 좋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측정한 지표는 ‘노트북에 얼마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지’, 그리고 ‘디지털 사이니지 앞에 서서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였습니다. 개발팀에서는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이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MD 분들은 서점에 관련된 스티커를 주로 붙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업무 관련성이 높은 제품을 전달했을 때 반응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에게 ‘안드로이드 리디북스 뷰어 짱이예요’라는 스티커를 주면 좋아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브랜드 제품 2: Sentinel
그래서 두번째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개발팀에는 Sentinel이라 불리는 소수의 DevOps분들이 있습니다. 개발과 운영을 모두 책임지면서 고생 많은 능력자분들입니다. 중세 기사의 메타포를 활용하여 멋진 스티커를 만들었습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Sentinel분들이 스티커를 부착했습니다. 이를 통해 ‘업무 관련성이 높으면 좋아한다’라는 가설을 확인했습니다. 수령자의 숫자가 적어서 더 소중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 프로젝트도 업무 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한 번 더 제작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브랜드 제품 3: 개밥 먹기 스티커
리디북스에는 ‘개밥 먹기’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개밥을 먹어봐야 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면서 불편한 점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여 퀄리티를 끌어 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리디만의 고유한 문화는 아니지만, 제대로 이를 실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업부설 연구소 앞에는 개밥그릇 모양의 현판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개밥그릇을 모티브로 하여, 개발자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스티커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404 에러가 떠서 자리에 없는 개밥그릇, 버그가 생겨서 파리가 주변에 가득한 개밥그릇 등이었습니다. 또 같은 컨셉으로 PC, 스마트폰 배경화면도 만들어서 배포했습니다. 측정한 지표는 마찬가지로 ‘얼마나 스티커를 많이 붙이는가?’, ‘얼마나 배경화면으로 많이 사용하는가?’였습니다.
다양한 개밥먹기 스티커
개밥먹기 스티커로 무장한 맥북
아무래도 Sentinel 스티커에 비해서는 업무 연관성이 낮았지만, 재미있는 컨셉과 심플한 디자인 덕분에 꽤 많은 분들의 노트북을 장식했습니다. 또, 스티커가 아닌 뱃지의 형태로 지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제작을 논의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
최근에는 그저 제품을 나눠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회사의 문화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밥먹기를 실천하는 문화와 함께 스티커 등의 굿즈를 연결시키는 시도도 해보려고 합니다. 실제로 일부 팀에서는 개밥먹기를 정기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브랜드 디자인 여정을 되짚어보니,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욕심만큼 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직원들을 공감, 감동하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전진하다보면 어느새 리디만의 고유한 문화와 유산이 잔뜩 만들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디자인 작업은 리디 브랜드 디자이너이신 김다흰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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