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혼란에서 트렌드로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날,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의 오류로 인한 전세계 대혼란을 우려했습니다. 이 때문에 관공서와 은행 등에는 비상이 걸리고, 불안한 시민들은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등 크고 작은 소동도 벌어졌죠. 여기서 사람들이 우려한 컴퓨터 버그를 ‘밀레니엄 버그’ 혹은 ‘Y2K’라 일컫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3년, ‘Y2K’는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컴퓨터 버그가 아닌 트렌드로 새롭게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Y2K’는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패션을 포함한 생활 양식을 이야기하는데요. 세대를 막론하고 ‘레트로(Retro)’의 유행은 빠짐없이 찾아왔지만, ‘Y2K’는 유행을 넘어 Z세대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감성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패션부터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2023년 현재로 타임 워프한 ‘Y2K 감성’을 살펴볼까요.
2000년대생 아이돌의 Y2K 감성
최근 걸그룹 ‘뉴진스’와 협업해 뮤직비디오, 굿즈 등으로 부활했습니다.
최근 들어, 대부분 2000년 이후 출생자로 이뤄진 4세대 아이돌이 1세대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청순미 혹은 사이버 전사 콘셉트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요. 무대 의상이나 앨범 커버, 화보 뿐만 아니라 CD 파우치 등의 레트로 굿즈, 피처폰을 닮은 팬 소통용 앱 UI 등에서도 진한 Y2K 감성을 포착할 수 있죠.
브랜드의 부활과 타임머신 카메라
한편 Y2K 감성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 달린 큼직한 카고 바지, 레그 워머, 키치한 키링 등이 인기 패션 아이템으로 떠올랐죠. 심지어 ‘티피코시’ 등 그 당시에 유행했던 과거 패션 브랜드가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장난감 같은 저화질 카메라가 메신저 선물하기 가전/디지털 부문 1위에 등극하거나, 20~30년 전 출시된 중고 디지털카메라, 캠코더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습니다. 빛바랜 색감과 낮은 화질 덕분에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죠. 이러한 촬영물을 편집해 유튜브 등의 SNS에 Y2K 감성을 담은 브이로그를 공유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유튜브 ‘빈티지 디카 브이로그’ 검색 결과 페이지
콘텐츠 속 Y2K
웹툰 역시 Y2K 트렌드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거나, 당시 10대들이 주로 향유하던 ‘인터넷 소설’ 문화를 소환하는 콘텐츠들이 그 사례인데요.
10대의 풋풋한 우정과 로맨스를 다룬 웹툰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은 90년대 후반 대한민국 학생들의 모습과 사회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삐삐, 공중전화, 당시 인기있던 폰트 디자인 등 배경 소품은 물론, 귀밑 3cm 두발 규정이나 비평준화로 인한 고교 입시 등 전반적인 생활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죠. 덕분에 독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2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0년대 초반부터 당시 10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은 ‘인터넷 소설’의 감성을 되살린 작품도 눈에 띕니다. 대표적으로 웹툰 ‘까불지 마 일진짱!’에는 제목부터 ‘인소 감성’이 제대로 배어있죠. 웹툰, 웹소설의 꾸준한 인기 설정인 ‘빙의’와 결합해, 왕년에 유행한 인터넷 소설 속 세계로 빨려든다는 설정인데요.
주인공은 졸지에 ‘사대천왕’ 타이틀을 갖춘 까칠남주와 평범하지만 명랑한 캔디여주, 그리고 ‘인소 감성’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로맨틱한 명대사를 숨쉬듯 주고받는 세계 속으로 떨어집니다. 덕분에 주인공과 독자는 하염없이 오그라드는 손발을 펴며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고군분투하죠. 그러면서도 어느새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듯 순수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인소 감성’을 만끽하게 돼요.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
20여 년 만에 돌아온 Y2K 감성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Z세대에게는 접하지 못한 새로움을, 주로 학창시절을 보냈을 M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덕분에 Y2K는 대중 소비와 유행을 이끄는 주요 세대인 MZ를 한데 아우르며 꾸준히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반짝 유행을 넘어 하나의 감성으로 자리잡은 Y2K. 오늘은 멀지 않은 과거가 선사하는 매력적인 감성에 푹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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