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물 웹툰,
주인공은 청소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실은 팬데믹 이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할 테고, 학생들은 멀어졌던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하겠죠. 청소년이 주인공인 학원물 스토리 역시 새로운 활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학원물은 10대 청소년의 삶을 다루지만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장르입니다. 만화연구가 김낙호는 학원물 웹툰을 두고 “학생 캐릭터들을 성장시키는 공간과 시기로 그려내며 10대의 모습을, 욕망을, 목소리를 담아내는 무언가”라고 언급했습니다.*
학원물의 주요 배경인 학교는 이른바 ‘작은 사회’로서 우리가 몸담은 현실을 보여주는데요. 새 학기를 앞둔 지금, 학원물의 상상력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줄까요?
* 김낙호,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학원물 속 10대 묘사와 변천사가 말해주는 것들」, 『지금, 만화 vol.2』, 한국콘텐츠진흥원(2019)
꿈과 우정을 향한
언더독의 모험
1990년대 만화 잡지 붐 속에서 탄생한 ‘소년만화’는 청소년의 취향과 세계관을 녹여내며 당대의 정서를 반영했습니다. 최근 영화로 흥행한 만화 원작 ‘슬램덩크’ 역시 대표적인 소년만화로서 나이대를 불문한 보편적 감동을 자아냈어요.
소년만화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꿈과 우정을 좇는 10대 주인공의 모험담과 성장담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년지 『주간 소년점프』는 과거 ‘우정, 노력, 승리’를 모토 삼아 소년만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어요.
학교 안팎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지금, 꿈과 우정이란 말은 다소 아득하게 들릴 법도 한데요. 하지만 소년만화의 정신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학원물도 있습니다. 웹툰 ‘지상최강고3히어로’는 소년만화 주인공에 합격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언더독의 도전기를 그렸습니다. 기존의 클리셰에 부딪히는 캐릭터를 통해 ‘소년만화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는 한편, 꿈과 우정의 모양을 지금의 맥락으로 빚어냄으로써 스스로 소년만화임을 증명합니다.
청소년기는 누구나 겪는 성장의 시기입니다. 타인과 구분되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로를 찾아 방황하고, 스스로 일어설 힘을 기르는 각별한 시기입니다. 그 시기를 선명하게 소환하는 이야기로서, 학원물은 별 볼일 없는 언더독일지언정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독려합니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어른의 용기
주요 배경이 학교인데도 ‘교육’을 다룬 학원물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선생 김봉두’, ‘클래스’ 등을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만, 교육 자체를 다뤘다기 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초점을 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학원물은 교육을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웹툰 ‘도덕과부도’는 초등 교사의 시점으로 어른의 역할과 공동체의 책임을 성찰하게 합니다. 시골 학교의 담임을 맡게 된 주인공은 새로 도입된 가상 교과서 「도덕과부도」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도덕을 규칙화하는 교육 방침으로 인해 아이들은 스스로의 윤리적 판단력을 잃고 규칙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규칙을 무기 삼고, 규칙의 포로가 되길 자처하면서 본래 목적이었던 도덕의 기준은 오히려 희미해지죠. 미스터리로 점철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던 주인공은 마을 공동체에 뿌리내린 크고 작은 모순을 마주하기에 이릅니다. 교과서 「도덕과부도」에 얽힌 비밀 역시 밝혀지고요.
교육이란 결코 단순치 않은 이야기 소재임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우리에게 교육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도 한층 분명해집니다. 교육철학자 마리아 몬테소리에 따르면, 어른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점진적으로 소개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좋은 교육, 나아가 성숙한 어른의 역할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통해 학원물은 더 나은 교실의 모습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학교 밖을 감싸는
따뜻한 관계망
학원물의 주인공이 전부 학교나 가정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학업을 중단하고 있는 초·중·고등학생은 42,755명이었고, 2020년 기준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 수는 11만 명을 웃돌았습니다.* 청소년의 가출과 학업 중단 사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주로 가정 내 폭력으로부터 생존하려고 집을 나오거나 자퇴하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는 청소년쉼터에서 생활했던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쳐 집을 나온 주인공이 고시원 생활을 견디다 못해 쉼터에 입소하면서 새로운 경험과 관계를 만나게 되는데요. 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시설이기에, 학원물의 주요 배경인 학교와는 공간의 성격이 다릅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어른의 돌봄 하에 또래관계를 맺고 일상을 꾸리는 청소년의 삶을 다뤘다는 점에서 학원물의 큰 주제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의 성장은 계속됩니다. 그 치열한 시행착오를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고 지켜봐주는 안전한 관계망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교실을 넘어 학교 밖으로까지 시선을 확장하는 이야기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를, 깊게 파인 서로의 상처를 살피게 합니다.
*「교육통계연보」, 교육부(2021). 「홈리스 청소년 지원·입법 정책 과제」, 국회 입법조사처(2021)
앞으로의 학교를
고민하는 학원물
학교를 떠난 뒤에도 학원물을 즐겨 찾는 심리는 그 시절의 우리를 마주하고 응원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최근 미디어에 그려진 학교는 씁쓸한 사회상을 가감 없이 반영하기도 합니다. 학교라는 공간에 짙게 드리운 상처를 마주하게 하죠.
그 상처를 치유할 힘을 함께 모색하자고 손 내미는 학원물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현실을 정교하게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굳게 닫힌 문을 열어젖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학교가 내딛는 다음 걸음을, 현실 속 청소년이 주인공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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