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판타지, 소위 ‘로판’ 장르에는 계급이 나뉜 신분제 중세 사회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황제의 권력에 버금가는 공작, 명예만 남은 한미한 귀족 가문, 저택에 새로 들어온 하녀 등…. 대개 로판 작품 속 인물에게 주어진 역할은 흔히 생각하는 직업보다는 ‘계급’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로판 세계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빛내며 일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뾰족한 송곳 삼아 계급과 신분, 성별에 따른 차별과 편견을 뚫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며 로맨스만큼이나 달콤한 사이다를 선사하죠. 로판 속에서 ‘일잘러’의 매력을 빛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이(異)세계의 ‘프로메테우스’
그리스·로마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과 함께 여러 기술을 전해줬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그가 건넨 선물을 기반 삼아 무기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빠르게 발전시키죠. 웹소설 원작 웹툰 ‘여왕 쎄시아의 반바지’의 주인공 역시 전문 기술과 지식을 가진 주인공이 현실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가며 혁신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대 한국의 의류 회사 직원이었던 ‘유리’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이(異) 세계로 떨어집니다. 이곳의 의복 기술은 형편없습니다. 헝겊 몇 개를 몸 위에 그대로 꿰매어 입거나, 제대로 고정되지도 않는 불편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살죠. 패턴 디자인 기술을 가진 유리는 한국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혁신 기술과 지식을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됩니다. 가난한 평민 신분이지만 자신의 실력을 차근차근 증명하며, 아흔 아홉 개 나라를 평정했지만 여전히 코르셋에 옥죄인 여왕의 전속 재단사로 발탁됩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주인공의 활약이 개인적 성공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드레스를 여왕을 통해 선보입니다. 여왕을 통해 선보인 편안하고 활동성 높은 의복은 세간의 관념을 뒤흔들며 사람들 머릿속에서 당연시되던 것들에 대한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죠.
또 다른 작품 ‘외과의사 엘리제’에서도 자신의 일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의사로 살던 기억을 가지고 다른 세계의 인물로 환생하는데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위생 개념’을 보급시키는 등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활약합니다.
일과 사랑에 빠진 ‘워커홀릭’
한편 사람이 아닌 자신이 하는 ‘일’과 사랑에 빠진 로판 속 주인공도 있습니다. 2020 공모전 최우수상을 거머쥔 웹툰 ‘까마귀 공작 부인’이 대표적 예시인데요. 작품의 주인공은 서른두 살에 국가 제일의 보석 감정사가 된 ‘멜리사’입니다.
칭찬받고 인정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정작 멜리사가 몸담은 사회는 그녀에 대해 ‘노처녀’, ‘몰락한 남작 가문’이라며 뒷얘기 하기 일쑤입니다. 타니아가 몸담은 사회는 20대 초반에 결혼하지 않으면 하자 취급을 받고, 귀족 부인이 되면 직접 사업을 펼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구조적인 차별과 편견 어린 시선을 뚫고 10년을 일구어 이뤄낸 자신의 보석상은 멜리사에게 인생 그 자체입니다. 직업과 가게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집념을 보일 수밖에요.
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보석상이 폐점 위기에 놓이자, 주인공 멜리사는 사랑의 서약이 아닌 동업자와의 계약으로서 결혼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윈터펠트 공작은 국왕의 조카인데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멜리사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막강한 ‘조력자’로 역할하죠. 주인공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주인공의 능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자신의 부와 권력 등으로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웹소설 및 웹툰 ‘상단주 남편 채용의 건’의 주인공 역시 20대의 젊은 나이에 구멍가게 소녀에서 국가 최대의 상단주로 자수성가합니다.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극성 구혼자들로 상단주 일은 물론 자신의 안전까지 위협받자, 몰락한 후작에게 서류상 결혼을 제안하죠.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직업’
앞서 소개한 작품들은 주인공의 직업 설정과 그 활약을 묘사함으로써 수많은 작품 속에서 경쟁력과 차별성을 획득했습니다. 이를 통해 공모전에 당선(’까마귀 공작부인’)되거나 웹소설의 웹툰화에 이어 애니메이션화 결정(’외과의사 엘리제’)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증명하기도 했죠.
패션 디자이너, 의사, 보석 감정사, 현대의 CEO에 비견할 만한 거물급 상단주 등 로판 세계에서 보기 드문 직업은 신선한 차별점입니다. 더불어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성취가 비교적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죠. 해당 분야의 생소한 지식을 쉽고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것은 덤입니다. 이처럼 캐릭터의 직업은 상상 속 인물에게 현실성을 입히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불어넣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작중 인물의 이야기에 보다 깊게 몰입하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장치죠.
*캐릭터 직업 사전
시대에 따라 직업도 변화해 왔습니다.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은 변화하고, 또 어떤 직업은 새롭게 탄생합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온 다양한 직업만큼, 다채로운 능력을 뽐낼 로판 주인공의 무궁무진한 탄생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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