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얼마 전 SNS와 커뮤니티를 달군 질문입니다. 많은 ‘엄마’들이 답변을 내놓았는데, 똑같은 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당연합니다. ‘엄마’는 역할일 뿐, 모두 배경과 성격이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요. ‘엄마’는 일반 명사지만, ‘엄마’라고 발음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얼굴이 떠오를 것입니다.
대중 매체 속에서 ‘엄마’는 대개 몇 가지 고정된 상으로 등장합니다. 비정하거나, 헌신적이거나, 억척스럽거나, 한정된 모습과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관성적 묘사로는 작품 속에 ‘엄마’에 대한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솔직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엄마를 다룬 만화·웹툰을 통해, ‘엄마’를 둘러싼 관념을 허무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엄마’를 둘러싼
세 가지 질문
최근 시청률 상승 곡선을 탄 화제의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의대 졸업 후 20년간 가정주부, ‘엄마’로 살던 주인공 ‘차정숙’이 다시 의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엄마’, ‘아내’의 역할에 밀려났던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되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 시청자는 입소문과 시청률로 호응했는데요.
이슬아 작가의 만화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자신의 엄마를 ‘복희’라는 이름의 독립된 개인으로 그려냅니다. 문장들은 모두 ‘엄마는’이 아니라 ‘복희는’으로 시작합니다.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했던 복희,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프리카까지 간 복희, 돈의 제약이 없다면 가정에서 독립하고 싶다고 담담히 밝히는 복희의 이야기를 풀어내요. 덕분에 독자는 흐릿하고 납작한 ‘엄마’ 대신 올록볼록 튀어나온 입체적인 ‘복희’를 만나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잃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한 명의 개인이 단순히 역할로만 규정되는 것이죠. 엄마인 동시에 독립된 개인인 ‘복희’와의 만남은 많은 ‘엄마’들의 이름을 새롭게 상기시킵니다.
‘헬리콥터 부모’라는 신조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모든 일에 간섭하는 부모를 뜻하는데요. 도를 넘어선 간섭과 보호가 부모 또는 자녀의 불안, 강박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됩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신조어로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가 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현대의 사회 현상으로 다뤄질 만큼 문화권을 막론하고 벌어진다는 것이죠.
웹툰 ‘사랑해서 그래’는 딸 ‘하영’의 시선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려 드는 엄마의 모습을 그립니다. 1년 전 해외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엄마와 함께 살게 된 하영. 그런데 첫날부터 엄마는 하영의 짐을 몰래 뒤지고, 사생활을 추궁하고, 어른의 권위를 내세워 윽박지릅니다. 결국 폭발한 하영에게 ‘걱정돼서 그렇다’, ‘엄마가 사랑해’라며 상황을 종료하려 하는데요. 이미 독립을 경험한 하영에게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점차 사랑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독자들은 작품이 담은 현실성에 소름 끼치는 공포와 후련한 공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지극한 현실성에 속이 울렁거린다거나,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었구나’라며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을 남겼죠. 한편 엄마가 딸에게 집착과 통제를 가하게 된 배경을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가정 내 꼭꼭 숨겨진 모호하고 사적인 경험을 끄집어 냄으로써, 비슷한 경험을 가진 독자로 하여금 깊은 공감과 혼란의 해소를 이끌어 냅니다.
유명 아동 전문가가 진행하는 한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은 명실상부 대중적인 ‘힐링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어른들에게도요. 이것은 프로그램 속 ‘금쪽이’에게서 자신의 유년기를 겹쳐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부모 혹은 보호자의 삶을 객관화하여 바라봄으로써 유년기에서 기원한 상처의 치유를 경험한 것이죠.
미국의 베스트셀러 만화가이자 ‘벡델 테스트’의 창시자로 유명한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 노블 ‘당신 엄마 맞아?’는 엄마와의 고착화된 애증 관계를 정면으로 마주 본 회고록입니다. 만성 우울과 강박 때문에 상담 치료를 받던 앨리슨은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냉담하던 엄마와의 상처투성이 관계를 직면하기로 하는데요.
결코 쉽지 않은 몸부림 속에서 앨리슨은 엄마 ‘헬렌’의 삶을 발견합니다. 헬렌은 성적 지향성을 숨긴 남편, 세 아이의 출산, 육아에 짓눌리면서도 자신의 지성과 재능을 놓지 않으려 애썼죠. 엄마는 앨리슨에게 친밀함과 다정함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상처와 결핍에서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 있는 ‘출구(작가의 소양)’를 줬습니다. 이해와 깨달음으로 상처를 극복한 회고록을 읽고, 헬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딸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냅니다.
당연한 두 글자를
새롭게 보는 일
앞서 소개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콘텐츠의 역할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일,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는 일이요. 세상에 모든 엄마의 수만큼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당연한 두 글자를 새롭게 보게 할 더 많은 질문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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