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새로운 종이 사는 세상이 있습니다. 인간을 먹는 이 새로운 종의 이름은 이터. 이터는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이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이터는 인간을 먹죠. 이터의 지배 체제에 완벽하게 복종하는 집단과 이를 전복하려는 집단의 갈등이 있는 세계, 미치 작가의 신작 <섬광행동>의 배경입니다. 웹툰 작가
미치 작가는 로맨 스릴러 장르의 최강자로 불립니다. <340일간의 유예>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작가는 판타지와 스릴러를 바탕으로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초월적인 사랑을 위해 판타지와 스릴러 요소를 활용한다고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관을 만들고, 에피소드마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과 사건을 만들어 독자를 사로잡는 미치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웹툰 작가
Q. 웹툰 작가라면 생활이 불규칙적일 것 같은데, 회사원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작가님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규칙적으로 일해요. 강아지 산책 후 트위터로 피드백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일하는 편이에요. 딴짓을 하더라도 작업할 준비 해 놓고 책상에 앉아서 하려고 해요. 비슷한 루틴을 가진 친구와 행아웃도 하고요. 혼자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외롭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으면 하거든요. 웹툰 작가
보통 주 5일 일하고, 쉬는 날은 정확히 지키려고 해요. 쉬는 날을 정해두지 않으면 계속 일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빨리 지치게 되고요. 아무리 바빠도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려고 해요.
Q. 일본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으나 중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데뷔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대학, 직장생활 등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요?
아쉬움은 없어요. 대신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그럼 캠퍼스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비슷한 맥락으로 회사를 잠깐이라도 다녀보면 좋았을 텐데 싶어요. 오피스물을 그려보고 싶은데 전문 용어도 잘 모르고, 어떤 부서의 어떤 캐릭터를 그려야 할지 잘 모르니깐 아쉬워요.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해 아쉬움이 있어요. 웹툰 작가
Q. SNS 계정을 운영하며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시나요?
작품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강아지 이야기처럼 일상적인 이야기,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요. 독자의 응원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고요. 수줍은 분들은 트위터로만 감상을 남겨주시는데요. 그런 고객분들의 수줍은 감상도 모두 찾아서 ‘마음’을 눌러요. 독자분들의 리뷰 모두 보고, 제 마음에 담아 그 원동력으로 일을 해요.
리디 독점 연재, <섬광행동> 제작기
Q. <섬광행동>이라는 단어는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처음 들어본 것 같아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제목은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본격적으로 작품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제목을 지어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제목을 짓는 게 중요해요.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연관되는 핵심 키워드를 떠올려요. 그리고 이에 대한 연관검색어, 사자성어, 영어 단어 등을 찾게 돼요.
키워드를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검색해봐요. 너무 직관적인 키워드는 재미가 없으니까 조금 신선한 키워드를 찾아요. 어울리지 않은 단어를 붙여보기도 하고요.
<섬광행동>은 핵심 키워드, 연관검색어를 찾다가 발견한 단어였어요. 보자마자 굉장히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해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Q. <섬광행동>은 요즘 유행하는 작품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개성이 느껴져요. 작품을 구상할 때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단편 소설집 <블러드 차일드>에서 <말과 소리>, <특사>를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기생수>라는 만화도 아주 예전부터 좋아했고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또 슬럼프를 겪을 당시에 그림을 그리는 재미를 되찾기 위해 배운 일러스트 수업에서 지금의 캐릭터를 떠올렸어요. 당시 남자아이, 남성 그리고 여성을 그리게 되었어요. 이 세 명을 주인공으로 스토리를 구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남자아이를 남성의 어린 시절로, 남성과 여성의 캐릭터를 로맨스로 엮으면서 스토리를 구상하게 되었어요.
Q. 인간을 지배하는 이터라는 종이 인간을 먹는다는 설정인데요. 로맨스 작품의 소재가 ‘식인’이라는 점이 정말 신선합니다.
사실 소재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로맨스에서 쓰기 괜찮은 소재일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죠.
처음 오렌지디와 작품 미팅을 할 때도 고민했는데, 당시 피디님께서 소재에 저만의 개성이 강하게 보이고, 특유의 연출이 잘 드러나서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용기를 얻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또 내가 해보고 싶은 소재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하고 싶은 것보다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 작품을 구상했던 기간이 길었거든요.
Q. 판타지 작품 위주이다 보니 세계관이 다채롭습니다. <섬광행동>에서 이터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먹지만, 이터와 인간이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하고요. 세계관을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작품을 구상할 때 세계관부터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영원한 사랑을 하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원불멸한 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걸 존재하게 하려고 세계관을 붙인 거고요.
<섬광행동>도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고, 거기에 식인을 소재로 하고 싶었어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먹는 행위는 금기되는 행위니까 다른 별에서 온 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종이 인간과 같이 살려면 계속 싸우는 상태일까? 만약 인간과 인간을 잡아먹는 종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면 어떨까? 이런 가정을 생각하며 세계관을 발전시켰어요.
Q. 인간을 지배하는 ‘이터’ 체제를 완벽하게 복종하는 집단, 그리고 이를 전복하려는 집단과의 갈등이 <섬광행동>에 나오는데요, 어떤 고민에서 이런 스토리가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옛날부터 범죄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도 빠짐없이 챙겨보는 애청자예요. 인두겁을 쓴 사람들이 살인 사건, 흉흉한 범죄를 저지르잖아요. 현실을 비추어 보면 괴물은 특별한 모습이기보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Q. 메나스는 훤칠한 키, 미소년 같은 외모로 인기가 많더라고요.
의외성이 있는 것을 좋아해요. 예쁘고 여리여리하게 생겼는데, 힘이 굉장히 센 메나스와 같은 스타일이 그렇죠. 게다가 요즘 체격이 좋은 남자 주인공이 로맨스에서 인기가 많잖아요. 이런 트렌드를 참고해서 캐릭터를 구상했어요.
Q. 율리의 의상이 정말 예쁘던데, 여주인공의 스타일링은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아무래도 여자 주인공을 그릴 때 자기 자신을 많이 투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는 다양한 옷을 입기를 좋아했어요. 망사, 크롭 외에도 캐주얼한 스타일까지 정말 다양하게 입었어요. 매 화마다 어떤 옷을 입힐까 고민하고 예쁜 옷을 입은 여자 주인공을 그리는 게 정말 즐거워요.
Q. 이번에 <섬광행동>을 통해 리디 독자를 처음으로 만나셨을 텐데, 독자의 반응이 어땠나요?
리디북스 독자들 피드백을 보면 확실히 다른 게 느껴져요. 다른 플랫폼과는 달리 저와 비슷한 또래인 여성이 많이 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이 많이 공감하고 댓글을 남겨주시면 그게 참 즐겁더라고요. 최근엔 웹툰 내용에 율리의 속옷 사이즈가 나왔는데 그걸 보고 부럽다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게 귀엽고 좋았어요. 어떤 분들은 메나스를 보고 ‘싸이코 집착 다정 남주(남자주인공)’ 같은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그것도 너무 재밌더라고요.
설레는 로맨스와 쫄깃한 스릴러가 만난
미치 작가만의 ‘로맨스릴러’
Q. ‘로맨스릴러 최강자’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작품 안에 로맨스만큼이나 심장이 쫄깃한 스릴러, 판타지적 요소가 강렬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로맨스릴러’란 무엇인가요?
<340일간의 유예>를 그릴 때까지만 해도 ‘로맨스릴러’라는 말이 없었어요. 대신 장난삼아서 두근거리고 설레는 순정 만화라고 영업하길 좋아했어요.
당시에 <치즈인더트랩>이 연재 중이었는데, 그때 로맨스릴러 라는 말이 생긴 것 같아요.
아, 물론 저는 항상 순정만화라고 생각하고 작업해요. 좋아하는 요소를 조금씩 넣으면 스릴러가 되긴 하지만요. 아찔하고 쫄깃한 스릴러 요소가 있는 와중에도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좋아해요. 이런 부분 때문에 로맨스릴러 라고 불리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Q.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결국은 각 캐릭터가 속한 세계나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사랑을 이야기하는데요.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영원불멸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요. 현실에선 불가능할지라도 그걸 말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작품을 그릴 때는 언제나 초월적이고 영원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라도 영원한 사랑을 말한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Q. 매화가 새로운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섬광행동>의 관전 포인트가 있을까요?
마음을 많이 비우셔야 해요. 메나스와 율리가 어떠한 결말까지 이르게 될지에 대해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극심했던 슬럼프를 함께 극복해준 독자들
Q. 데뷔작 <340일간의 유예>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번아웃과 슬럼프를 심하게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에세이 만화 <데뷔작이 히트를 쳤다>로 풀어내셨더라고요.
일단 첫 작품이 너무 잘됐기 때문에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때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았어요. 항상 잘 됐으면 좋겠는데 만족하지 못했고요.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나는 더 해야 해’, ‘기대하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면 안돼’라고 하는 등 압박감에 시달렸어요. 웹툰 작가
굉장히 절망적인 시기였어요. 당시 심리상담 선생님께 ‘이제 정말 끝까지 온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막다른 골목까지 갔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상황도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에세이 만화로 그렸더니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제가 그리는 만화는 상업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했어요. ‘힘든 상황일지라도 내일은 살아야지’처럼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요. 그런데 희망적인 마무리를 했더니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더라고요.
Q. 많은 독자분이 공감하시고 힘을 얻으셨던 것 같아요. 과거에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독자들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해주신다는 것도 참 감사했고요. 댓글로 응원도 많이 남겨 주셨어요. 소중한 지인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 만화를 그리며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고 힘들었던 시간을 승화시킬 수 있었어요.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일희일비할 것 없고, 편하게 살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섬광행동>을 사랑해주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
리디북스에서 처음 웹툰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봐주시는 독자들이 많아 놀랐어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별점과 댓글을 남기며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리디북스 고객이라서 제 작품을 보게 된 독자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리디북스 플랫폼이 있어서 연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완결 작품을 선호하고, 연재 중인 작품은 시작하기 어려운 심리를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초반부터 함께해주신 분들이 제게는 많은 응원이 돼요. 앞으로도 다음 화가 기다려지도록 관전 포인트를 만들면서 항상 열심히 그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실시간으로 보는 것이 후회되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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