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막상 입추가 되면 여름이 떠나는 게 서운하죠. 야속할지 몰라도 계절은 역행하는 법이 없이 순서대로 흐를 뿐입니다. 웹툰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다시 오지 않을 초여름처럼 청량한 학창 시절을 음악과 함께 담았습니다. 살아 숨 쉬는 듯 생동감 있는 학생들이 작고 아름다운 섬마을을 배경으로 고민과 도전을 거듭하는데요. 여린 살갗을 가진 10대의 감각 그대로 공감도 높은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웹툰 작가
이 작품은 리디 웹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과 ‘IP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영화 ‘명량’, ‘한산’ 등을 제작한 ‘빅스톤픽처스’가 영상화를 맡는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고요.
작품을 그린 ‘잔디롤빵’ 작가는 2017년 데뷔해 2021년엔 협업 작품 ‘비밀 독서 동아리’로 최고 권위의 만화상인 아이스너 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습니다. 개성있는 그림체와 현실감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매료시킨 ‘잔디롤빵’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경험과 취향, 이야기의 추진력 웹툰 작가
언제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셨어요?
초등학생 때 동화책 만들기 수업에서 처음 만화를 그렸습니다. 제목은 ‘거북이의 여행’이었는데요. 한 권을 그려 숙제로 낸 뒤에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만화를 40권 넘게 그려 친구들과 돌려봤습니다. 시작은 평범한 동화였는데 나중엔 액션 만화가 됐어요. 이후에도 주변의 칭찬을 듣는 게 좋아 계속 만화를 붙잡게 됐습니다.
웹툰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 작품이 있나요?
본격적으로 만화를 배우던 고등학생 시절, 밴드 만화 ‘스콧 필그림’이 웹툰 작가로서 스타일을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줬어요. 좋아하는 밴드나 게임 패러디, 출신지인 토론토 사회 분위기 등 작가가 가진 취향과 경험이 속속들이 녹아든 작품이에요.
작가님 역시 개인적인 경험이나 취향을 작품에 반영하는 편인가요?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도 제 경험과 취향을 때려넣은 작품이에요. 사실 첫 구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어요. 처음엔 섬마을이라는 좁은 사회에서 투닥투닥 관계 맺는 아이들의 이야기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 진행이 막혔어요. 돌파구를 찾다가 과거 경험과 밴드음악·학원물 같은 취향을 하나둘 넣었습니다. 그러자 이야기가 새롭게 굴러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주인공이 섬마을 고등학교로 간 까닭
하루아침에 서울에서 외딴 섬마을 학교로 전학 온 질풍노도의 고등학생 ‘서라’, 평생 살던 섬마을을 벗어나 유명 뮤지션이 되고 싶은 음악 외골수 ‘바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지만 ‘답답한 섬마을을 벗어나자!’라는 공통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음악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추억을 쌓는데요. 서라와 바다는 정말 음악으로 섬마을을 떠날 수 있을까요? 혹은 떠나게 될까요?
서울이나 대도시 대신 외딴 섬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섬마을 배경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게 첫 발상이었어요. 이야기를 구체화하면서 ‘섬마을’이라는 설정만 남고 모든 게 바뀌었고요. 특히 주인공 서라가 갑자기 섬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설정은 실제 제 경험에서 따왔습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귀농하셨어요. 도시에 살다가 농촌에 가자 모든 것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사방은 논밭이고 버스는 하루에 딱 네 대 다니는 동네였거든요.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지 못했어요. 돌이켜 보니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더라고요. 그때 지역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경험을 이야기로 다뤄야겠다고 줄곧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주인공 서라가 같은 경험을 하도록 설정했어요. 대신 서라는 섬마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쌓인 기억들이 섬마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서라와 작가님은 서로 닮았나요?
안 닮았어요. 저는 뭐 하나를 살 때도 사흘은 고민할 만큼 생각이 많아요. 반면 서라는 다혈질에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고요.
이 작품에서는 서라와 바다 외에도 다양한 친구들이 섬마을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한 식구처럼 어울려요. 주변을 잘 챙기는 반장 ‘선우’, 친화력 좋은 ‘마르코’, 엄친아처럼 잘난 ‘상준’처럼요. 이 세계에 서라가 빠르게 녹아들려면 저랑 비슷한 성격보단 붙임성도 좋고 들이받기도 잘하는 편이 좋겠더라고요.
‘밴드 만화’에 명확한 사운드가 없는 이유
다양한 음악 중에서도 밴드를 소재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밴드 만화에 애착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스콧 필그림’의 영향이 컸어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친구들 사이에서 그 만화가 유행했어요. 친구들끼리 만화책을 계속 돌려보고, 밤에 기숙사 방에 한데 모여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영화를 보면서 낄낄댔어요. 나중엔 작품을 다 외울 지경이 되었고요.
그런데 웹툰으로는 음악을 들려줄 수가 없잖아요. 웹툰 상에서 음악을 어떻게 전하고자 하셨나요?
사운드가 없다는 점은 밴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맞닥뜨린 가장 큰 고충이었습니다. 만화에서 아무리 음악을 묘사해봐야 독자들에겐 들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굳이 명확한 사운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어요.
대신 ‘이들이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이들이 음악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에 집중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 ‘바다’는 음악을 위해, ‘서라’는 음악을 통해 섬마을을 떠나고자 해요. 그런데 점차 두 사람은 자신의 소망을 예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거나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밴드에 대한 로망을 잔뜩 모아서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그 과정을 그렸습니다. 노래 제목을 알아내겠다고 무작정 섬마을에서 홍대까지 뛰쳐나가 버스킹을 하거나, 마을 벌판에서 공연을 열다가 비가 쏟아지자 카페로 들어가 재개하는 에피소드가 그래요. 그리면서도 서라와 바다가 엄청 부러웠어요.
작가님도 서라와 바다처럼 학창 시절에 밴드를 꾸린 경험이 있으세요?
‘스콧 필그림’을 보고 베이스가 너무 멋져 보였어요. 고3 때 수시를 마친 뒤 학교에서 밴드를 만들고 베이스도 직접 연주해 봤어요. 2-3개월 정도밖에 안 해서 이름도 ‘시한부 밴드’였지만, 12월에 열리는 학교 축제에서 세 곡짜리 공연도 올렸습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베이스 솔로 연주까지 준비했어요. 그런데 공연 때 완전 망해버린 거예요. 반전은 아무도 제가 망한 줄을 모르더라고요.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를 그리는 지금도 기타를 연습하고 작곡도 시도해보고 있어요. 음악을 잘 아는 독자가 봐도 몰입이 깨지지 않게끔 현실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합니다.
인생작을 꾸준히 웹툰 작가
공모전에서 ‘IP상’,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한데요.
공모전 덕분에 탄생한 첫 장편 웹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커요. 장편은 늘 숙원 사업처럼 생각만 해왔습니다. 오랫동안 구상하다 보니 내용이 커져서 쉽사리 원고로 꺼내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공모전 출품이라는 ‘마감’을 만들었더니 어떻게든 그리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앞선 회차를 다시 읽어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복선을 더 넣었다면 뒤 회차에서 더 풍부하게 연결했을 텐데, 하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 아쉬움은 감수하고 있습니다. 모든 디테일을 완벽히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수 없었을 것 같거든요.
최근 영상화 소식도 보도됐어요.
솔직히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화가 되면 그제야 실감이 조금씩 날 것 같아요. 영상화 된 작품에서 음악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가 가장 기대되고 설렙니다.
독자들이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를 떠올릴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길 바라세요?
서라와 바다를 제일 먼저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대한 기억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듯, 이야기에 대한 기억도 인물에 대한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캐릭터가 좌우한다고 생각해서 조형에 정말 많은 공을 쏟았어요.
앞으로 어떤 웹툰을 그리고 싶으세요?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를 연재하면서 ‘인생 웹툰’이라는 댓글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이만큼 기분 좋은 피드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인생 웹툰을 꾸준히 만들고 싶어요.
리디에서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보러 가기 웹툰 작가
고객과 발맞춰 새로운 콘텐츠 경험을 선보이는
리디와 함께할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