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된 고립의 시대
전세계를 덮친 팬데믹 사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은 극도로 좁아졌습니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교류도 상당 부분 생략되었죠. 그 과정에서 ‘코로나 블루’ 등 팬데믹 사태로 인해 현대인이 겪게 된 우울감·고립감 등을 지칭하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어요. 베스트셀러
여기서의 외로움과 고립감은 단순한 물리적 고립에서 오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웃, 회사, 마을 등 우리를 둘러싼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듯한 소외감이나 무력감에 가까운데요. SNS가 외로움을 충분히 달래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한국리서치 설문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SNS 이용량이 늘었다는 응답은 38%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느낀 우울 및 외로움이 SNS를 통해 해소된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습니다.*
*한국리서치, SNS와 코로나19 이후 인간관계
로컬의 재발견
흥미로운 사실은 이 위기 속에서 ‘동네’의 재발견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대형마트나 주요 도심지보다 동네 상점 소비가 증가하는 ‘홈어라운드 소비’, 지역 기반 커뮤니티 등을 뜻하는 ‘하이퍼 로컬’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오프라인 가맹점 카드 결제 건수는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동기 대비 약 7% 줄었으나, 집에서 반경 500m 이내 가맹점 결제 건수는 8% 증가했습니다.*
*롯데카드, 사회적 거리두기로 ‘홈 어라운드 소비’ 늘고, 원거리 소비 줄었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문앞에 물건이 도착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서비스나 재화만을 위해 동네 가게를 이용하진 않았을 겁니다. 일상적인 교류를 주고 받으며 소통의 갈증을 풀기 위해 찾은 것임을 가늠할 수 있죠. 대수롭지 않게 늘 지나치던 배경에 불과했던 ‘동네’가 일상의 중심으로 새롭게 들어온 것입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감과 위로의 이야기
이같은 정서는 자연스레 이야기 콘텐츠에도 녹아들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이야기의 배경은 모두 특별한 공간이 아닙니다. 편의점, 서점, 상점, 사진관, 목욕탕 등 동네에서 흔히 마주치는 일상적인 공간을 찾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힐링을 선사합니다. 팬데믹을 계기로 동네를 재발견한 것처럼, 동네마다 있음직한 평범한 가게를 배경으로 한 일상의 이야기가 독자의 이목을 새롭게 끌어온 것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소설 ‘불편한 편의점‘입니다. 청파동 골목길에 자리잡은 작고 허름한 편의점에 어느 날 서울역 노숙자 출신 ‘독고’가 야간 알바로 들어옵니다. 불안함도 잠시, 그는 우직하고 엉뚱한 언행으로 편의점을 찾은 사람들의 얼어붙고 꼬인 마음을 차근차근 녹이고 풀어냅니다. 해당 소설은 지난해 출간된 뒤 리디 한국소설 스테디셀러 1위에 등극했고, 인기에 힘입어 최근 속편까지 출간됐어요.
이외에도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하쿠다 사진관’ 등이 비슷한 유형의 일상 소설로 꼽힙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 ‘불편한 편의점’은 드라마로,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은 오디오 콘텐츠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려왔어요.
웹툰 중에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논픽션을 웹툰으로 각색한 ‘옷장 여는 빵집’은 동네 빵집을 찾은 인물의 일상적이고 내밀한 고민을 귀담아 듣고, 이를 ‘옷장 정리’라는 독특한 참견으로 해결해 나갑니다. 한편 ‘느린 장마’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계기로 만난 평범한 청춘들이 쌓아 나가는 성장담이고요.
독자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이야기가 벌어진 듯한 생생함, 깊이 공감하고 따뜻하게 위로받는 일상적인 재미를 특유의 장점으로 꼽습니다. 편의점처럼 어느 동네에나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가게들을 떠올리며, 그곳이 품고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상상하기도 하고요. 작품 속 가게들이 실제로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긴 여운을 음미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시대로부터 태어난다
이야기는 시대로부터 태어납니다. 다시 말해, 이야기는 지금을 사는 우리의 정서를 담습니다. 볼일만 보고 지나치려는 손님에게 참견하는 불편한 편의점도, 낯선 손님도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며 지친 마음을 헤아려주는 서점도 당장의 현실에서는 그저 ‘판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단순한 판타지에만 그치게 두지 않는 것도, 이 다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을까요? 다음 유행할 이야기는 어떤 메시지를 품고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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