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캐릭터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우리 곁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부터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 된 역사 속 인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장르를 파고든 여성 주인공까지 다양합니다.
여성 캐릭터의 도전은 드라마·영화뿐 아니라 뮤지컬, 연극, 애니메이션, 웹툰에 이릅니다. 리디 독자들이 선호하는 주인공 유형에서도 그 경향이 나타나는데요. 지난 2년간의 ‘웹툰 키워드’ 검색 데이터를 살펴보니, 과거와 또렷하게 달라진 여성 캐릭터의 특징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캐릭터가 한계를 확장한다는 건 여성이 할 수 있는 이야기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웹툰 속 여성 캐릭터의 세 가지 유형을 소개할게요.
2년 연속 최고 인기 #능력여주
똑같은 디즈니 영화라도 ‘백설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과 겨울왕국 ‘엘사’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요. 두 캐릭터의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능력’의 유무 아닐까요? 물론 백설공주도 동물들과 대화하는 능력이 있긴 합니다만, 엘사의 능력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리디 데이터에 따르면, 여자 주인공을 수식하는 웹툰 키워드 중 최근 2년 연속 가장 높은 검색량을 차지한 건 ‘능력여주’였습니다. 2023년 ‘능력여주’ 키워드 검색 수는 전년도 보다 약 1.8배 더 높아졌어요.
‘능력여주’는 자신의 능력을 펼쳐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등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 캐릭터입니다. 이야기의 장르나 시대적 배경에 따라 ‘능력’은 다양해요. 예를 들어 신분제 사회에서 타고난 권력, 아무도 대적 못할 초인적인 힘, 내지는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주어진 고난에 순순히 항복하지 않고 원하는 삶을 쟁취하는 데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이죠.
과거 수동적인 역할만을 부여받던 캐릭터 유형이 ‘능력여주’로 재해석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공주님들은 얌전한 모습으로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요즘 공주님들에게선 권위 있는 군주의 면모가 돋보입니다.
일례로 웹툰 ‘시한부 공주님을 사랑하게 된다면’의 주인공은 공주 신분을 숨긴 채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운명에 맞선 여정을 떠납니다. 특히 자신의 죽을병을 직접 고치려 모험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공주님인데요. 독자 리뷰를 인용하면, 주인공은 “절망 앞에서 웃을 줄 아는 진취적인 사람”이며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모험을 나선 당찬 여주”입니다.
여성 캐릭터에 ‘능력’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한 여성상에 대한 독자의 열망을 충족하는 동시에 극을 시원시원하게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능력여주’는 웹툰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누릴 전망입니다.
사랑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순정여주
로맨스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판타지는 ‘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걸 대변하는 캐릭터 유형은 역시 ‘순정여주’인데요. 2023년 ‘순정여주’ 키워드는 검색 유저 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220% 증가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로맨스 상대를 향한 일편단심이야말로 ‘순정여주’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른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캔디형 주인공’도 여기 속합니다.
하지만 요즘 ‘순정여주’가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자신의 욕망에 적극적이고 마음 바쳐 사랑을 지키려 한다는 겁니다. 일례로 웹툰 ‘에반젤린의 검’은 ‘순정여주’가 사랑 앞에서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요. 소꿉친구 시절부터 좋아하던 남자 주인공을 저주에서 구하기 위해, 검을 들고 기사가 되는 여자 주인공을 그렸습니다. 사랑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용기가 돋보이는 캐릭터죠.
과거의 순정 만화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을 로맨스에 위탁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1 그 점에서 오늘날 ‘순정여주’의 변화는 고무적입니다. 도구적 관계가 흔해지고 ‘가짜’와 ‘진짜’가 분별 없이 뒤섞이는 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의 진정성을 고집하는 여성 캐릭터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1 『웹툰 속 여성 캐릭터』 (2021, 커뮤니케이션북스)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쁜여자
“난 나쁜 기집애 나난 나쁜 기집애”
“욕심이 남보다 좀 많은 여자,
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여자”
2010년 전후 유행한 K팝을 가만히 들어보면 여자가 ‘나쁘다’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노랫말이 눈에 띕니다. 기존의 통념을 비틀며 대중을 열광시킨 ‘나쁜여자 신드롬’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2023년 ‘나쁜여자’ 키워드를 검색한 리디 유저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6배 상승했어요.
‘나쁜여자’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도덕규범을 깬다는 것인데, 그 규범의 내용이 시대를 따라 변화하므로 ‘나쁜여자’의 재현 방식도 달라집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전시를 통해 ‘나쁜여자’의 계보를 제시했는데요. 과거 ‘나쁜여자’들이 성 역할에 도전하거나 복수를 하여 ‘악녀’로 낙인찍혔다면, 최근 ‘나쁜여자’들은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 노골적으로 ‘악’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요즘 스토리의 추세가 ‘나쁜여자’의 복합성에 기여합니다. 일례로 웹툰 ‘상화담’의 주인공은 이야기 초반 ‘순정여주’에 가까웠으나 후반부로 가며 ‘나쁜여자’로 거듭나는데요. 궁중 암투와 권력 탈취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데 치를 떨던 주인공은, 결국 왕위에 오른 뒤 차가운 전쟁광이 되어 살육을 일삼게 됩니다.
폭력과 배신에 맞서 복수하는 여자, 돈과 권력을 누리려 악행을 저지르는 여자, 악마의 꾐에 넘어간 여자까지 ‘나쁜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매력은 끝이 없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인간적 캐릭터로서, 때로는 첨예한 논란을 촉발하는 문제적 캐릭터로서 ‘나쁜여자’는 쭉 활약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의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 캐릭터
앞서 여성 캐릭터의 유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웹툰의 사례로 살펴봤습니다만, 몇 가지 키워드로 캐릭터를 딱 떨어지게 재단하거나 유형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을 사는 인간의 모습이 그러하듯 극중 인물들도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변화하는 캐릭터를 통해 현실의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극중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그들을 흡수하고 통과해 결국엔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창의적이고 신선한 여성 캐릭터는 새삼스레 우리 곁을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늘 잠들어 있던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동시대 독자의 공감을 사는 여성 캐릭터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길, 매체를 넘나들며 활약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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