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최신 트렌드로 ‘연작소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2년 출간된 연작소설 종수는 24권으로,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해요.1 연작소설은 단편과 장편의 매력을 모두 충족하는 하이브리드형 소설입니다. 별개의 여러 단편으로 구성된 하나의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각각의 이야기가 완결성을 갖추었지만, 인물과 배경 등 작품의 내적인 요소가 서로 긴밀히 연관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묶입니다.
한국 연작소설의 전성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모두 70-80년대를 풍미했던 연작소설입니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흐른 지금,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고 박상영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영상화를 앞두고 있죠. 다시금 떠오르는 연작소설의 인기는 어디에서 기인할까요? 재미있게도 그 실마리는 ‘숏폼’에 있습니다.
소설도 ‘숏폼’이 대세?
요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장편보다 경장편을, 경장편보다 중·단편을, 심지어 중·단편보다 엽편소설을 더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짧은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가 늘었다는 건데요. 예스24에 의하면 최근 3년간 한국소설의 출간 종수는 계속 증가했는데, 특히 20대 독자들 사이에서 단편소설의 인기가 커졌다고 해요. 한국소설 중 중·단편 분야의 판매량은 5년 전인 2018년 보다 10.8% 증가했고, 20대 구매자의 비중 또한 9%P 상승했습니다.
콘텐츠 업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숏폼’의 저력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콘텐츠 소비 습관이 모바일 위주로 재편되면서,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일컫는 ‘숏폼’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데요. 그 경향이 출판계로도 번지면서 단편소설의 인기에 힘을 싣는 모양새입니다. 즉, 디지털 매체 환경의 다변화가 소설의 형식에 영향을 준다고도 볼 수 있겠죠.
1 한국소설 출간 늘었다…20대 독자들, 짧은 소설에 호응
짧은 호흡, 서사의 깊이
아우르는 연작소설
물론 짧은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작가의 개성을 강렬히 드러내는 것이 단편의 매력이지만, 장편보다는 서사의 깊이나 구조의 짜임새를 확보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롱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촘촘한 빌드업(build up)과 다층적인 감동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런 점에서 연작소설은 ‘단편’과 ‘장편’의 장점과 한계를 봉합하는 형식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독자의 선호에 맞는 짧은 호흡과 서사의 깊이를 모두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돼 가볍게 읽히면서도, 작품 속 세계가 긴밀히 맞물려 복합적인 감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자연스레 독자의 몰입과 상상을 극대화하는데요.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풀어낸 연작입니다. 단편 각각의 제목은 다르지만, 결국엔 중심사건을 둘러싼 서로 다른 세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하나의 커다란 장편을 이룹니다. 2023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역시 중단편 네 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20대 성소수자의 청춘을 그렸습니다.
세계관이 탄탄한 단편소설은 출판사에 의해 ‘연작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르문학 브랜드 ‘우주라이크소설’은 젊은 작가들의 단편을 연작으로 확장해 선보이는데요. 일례로 강민영 작가의 스릴러 소설 ‘식물, 상점’은 단편 출간 당시 2만 5천자라는 짧은 분량이었지만 이후 여섯 편짜리 연작소설로 확장되었습니다. 각 단편마다 초점을 두는 인물이나 사건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간을 중심으로 일관된 주제의식을 관통하며 강화합니다.
연작소설, 핵심 무기는
이야기의 ‘확장성’
연작소설은 몇몇 인물이나 사건에 천착하기 보다 작품 속 ‘세계’에 무수히 잠재된 이야기를 꺼내 펼친다는 점에서 영화·드라마의 ‘스핀오프(spin-off)’ 개념과도 유사합니다. 스핀오프는 원작과 동일한 세계관을 취하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는데요. 마치 영화·드라마가 스핀오프로 계속되는 것처럼, 소설은 한 권의 책을 넘어 무한히 확장되는 ‘스토리 IP’로 기능하고 있죠. 연작소설의 약진이 ‘독자’와 ‘시청자’ 모두를 설레게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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