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건장한 악당의 멱살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립니다. 맨손으로 철문도 우지끈 뜯어버리고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면서도 표정은 힘겨워 보이긴커녕 평온 그 자체입니다. 강력한 ‘먼치킨’ 히어로 이야기 속에서 기대해 봄직한 장면일 텐데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이 히어로가 딸과 손녀를 둔 할머니라는 점입니다. 최근 흥행 중인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속 남순의 할머니 ‘길중간’의 모습이거든요.
매번 엄마·할머니·마녀만
할 순 없지!
그동안 스토리 콘텐츠 속에서 중노년 캐릭터, 특히 중노년 여성 캐릭터에게는 대부분 전형적이고 한정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누군가의 (조)모, 인생의 지혜를 주인공에게 일깨워주는 현자 혹은 괴팍한 마녀와 같은 역할이었죠. 자연히 주연보다는 주인공의 근처를 맴도는 조연인 경우가 많았고요.
하지만 최근 ‘할머니 히어로’ 길중간처럼 분연히 떨쳐 일어나 히어로로 활약하는 중년 여성·할머니 히어로가 속속 등장하며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역할과 관습적인 설정을 벗어던진 중노년 여성 히어로들, 아직은 다소 낯설지만 그래서 더 반가운 이들을 만나볼까요.
은퇴 앞둔 킬러부터
요양병원의 치매 탐정까지
중노년 여성 히어로 역시 작품에 따라 다양한 인물상으로 표현됩니다. 깊은 관록과 오랜 경험으로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롭고 강력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삶의 마지막이라 여겼던 순간 히어로로 눈부시게 각성하는 인물도 있죠.
먼저, 한 영화의 여러 시리즈 속에서 청년부터 중년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형이 있습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살인마를 대적하는 ‘할로윈’의 ‘로리 스트로드’,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대결을 다룬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가 대표적 사례인데요. 두 사람은 스토리 전개에 따라 강력한 히어로로 성장하며, 최근 시리즈 ‘할로윈(2018)’과 ‘터미네이터:다크페이트(2019)’에서 만반의 준비와 실전 경험을 갖춘 은발의 백전노장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삶의 마지막을 직감하던 인물이 우연한 사건을 마주하며 히어로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영상화 예정인 두 소설 ‘파과’와 ‘레모네이드 할머니’ 속 주인공의 이야기인데요. ‘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자신의 은퇴를 직감하게 된 65세의 킬러로, 건조하기만 하던 삶 속에서 난생처음 지키고 싶은 것을 만나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붓습니다. 한편 치매 전문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병원에서 신생아 사체 유기 사건이 일어나자, 맹랑한 꼬마와 함께 병원의 비밀을 파헤치는 치매 할머니 탐정으로 맹활약합니다.
이 밖에도 인생 최악의 순간 갑자기 멀티버스에 휘말려 세상을 구할 유일자가 된 중년 여성 ‘에블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대대손손 모녀 계승되는 초인적인 힘으로 자신의 딸, 손녀와 함께 불법 마약 거래 조직을 때려잡는 할머니 히어로 ‘길중간’(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까지. 다채로운 설정과 배경을 지닌 중노년 여성 히어로가 요즘 관객과 독자의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히어로의 모습이 다양해지는 이유
콘텐츠 매체를 막론하고, 과거 히어로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유형의 인물들이 히어로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로 소개한 ‘중노년 여성’ 역시 그중 하나죠. 이처럼 작품 속 히어로의 모습이 다양해지는 것은 이들이 마냥 강하고 초월적이기만 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어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주변 인물과 세계를 구하는 동시에, 자신과 세상에 대한 낡은 관념을 부수며 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중에게 히어로는 각자의 삶에 용기와 영감을 불어 넣는 존재인 것이죠.
작품 속에서 중노년 여성 히어로의 나이는 극복해야 할 한계라기보다 그저 인물을 이루는 설정 중 하나로 다뤄집니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선명하고 다채로운 모습의 나이 든 여성들은 대중에게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 대신 새로운 용기와 기대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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