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28년 반포된 ‘훈민정음’, 한글은 누구나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문자입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익혀야 할 한문 대신 한글을 통해 조선 여성과 서민에게도 문자 생활이 보급될 수 있었죠.
덕분에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나 기득권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한글을 통해 기록으로 남아 길고 먼 시공간을 넘어 전해지게 되었는데요. 소설과 산문시, 편지 등의 형태로 남은 한글 기록은 풍부한 이야기를 머금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한글,
누가 어떻게 썼을까?
한글이 창제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세기부터 한글 편지는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왕이 자신의 딸에게 안부를 묻고, 홀로된 아내가 일찍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죠. 편지에 담긴 일상적인 이야기는 이들의 일상 풍경, 생활상을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역시 시대적 배경과 신분을 막론하고 지금 우리와 같은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한편 18세기부터 조선에는 소설 읽기 붐이 일었습니다. 이 돌풍의 근원에는 오늘날의 도서대여점에 비유할 수 있는 ‘세책집’이 있었는데요. 세책집을 찾은 고객들이 너나없이 빌려 간 도서가 바로 한문 소설의 한글 번역본이나 한글로 창작된 소설, 즉 한글 소설이었습니다. 한글 소설 독서는 양반가 여성의 인기 취미에서 신분에 상관없는 대중적 여가로 자리 잡습니다. 폭발하는 수요 속에서 한글 소설은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가정사, 남녀 간의 사랑, 영웅담, 심지어는 귀신이 사람 몸에 빙의하는 호러물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다루며 부흥기를 이루었죠.
이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한글 기록은 오늘날 풍부한 이야기 유산으로 활약하고 있는데요. 세월을 뛰어넘어 후대 사람들과 호흡하는 셈입니다.
한글이 실어나른
생생한 이야기들
‘심청전’은 판소리를 한글로 옮긴 대표적인 한글 소설이죠. 웹툰 ‘그녀의 심청’은 이 작품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오랫동안 ‘효(孝)’의 아이콘으로 대표되어 왔죠. 그러나 심청이 정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진 희생했을까요? 장 승상 부인은 왜 자신과 아무 연관 없는 심청에게 막대한 재산을 주겠다고 했을까요?
이 작품은 심청전 속 주요 여성 인물의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판소리’ 즉, 음악과 목소리로만 전달되었던 이야기를 한글로 생생히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어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한편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한글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안동 이응태의 묘에서 출토된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가 그 사례인데요. 이응태의 아내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직접 한글로 적어내린 편지입니다. 아내는 일찍 떠난 자신의 남편에게 왜 그리 빨리 떠났느냐 원망도 하고, 꿈에서라도 자신을 찾아와 달라며 청하기도 하는 등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종이 위에 여백 없이 눌러 담았습니다.
편지에 담긴 진솔한 감정은 수백 년 떨어진 시간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마음에도 파문을 일으켰고, 이 사연은 원석처럼 가공되어 보석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졌죠. 조두진 작가의 소설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웹툰 ‘능소화’가 바로 그 사례인데요. 실제 편지를 중심으로 능소화에 얽힌 전설을 엮어,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담아냈습니다.
이처럼, 한글로 전해져 온 이야기 유산은 후대 창작자의 상상력을 통해 보다 입체적이고 새로운 이야기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한글
조선시대의 공적 기록은 주로 한문으로 쓰였으나 한글은 남녀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마음을 나누고 창의력을 발산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남은 글은 지금 시공간을 초월해 그 글에 고스란히 담긴 정보와 정서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고요. 한글이 우리의 이야기 유산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매개로 활약하는 것이죠. 이는 한글이라는 독보적 문자가 가진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멋진 예시입니다.
한글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문자지만, 탄생과 보전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보수적인 사대부 계층의 반대, 일제 강점기 민족 말살 정책 등에 의해 박해받기도 했죠. 그러나 사람들의 손에서 꾸준히 생명력을 더해온 결과 지금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한글을 우리의 고유 문자로 향유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전한 우리의 이야기 유산, 또 한글을 통해 우리가 담아낼 미래의 유산은 무엇이 될까요?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정교하고 명료한 문자 한글을 타고 멀리 깊이 가게 될까요.
참고 문서 및 이미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설(小說)
국립중앙박물관, ‘심청전’
고객과 발맞춰 새로운 콘텐츠 경험을 선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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