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라마 <악귀>가 성황리에 종영했습니다. <악귀>는 호러 장르와 귀신 이야기의 외피를 가져와 현대인의 각박한 삶에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는 호평을 얻었어요. 호불호가 나뉘는 공포물이지만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낸 사례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익숙한 소재나 관습에 신선한 매력을 더해주는 장치로서 ‘공포물’의 활약이 눈길을 끕니다.
탈출할 방법은
오로지 엔딩뿐
그런 공포물이 웹소설을 만나 새로운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공포 소설이나 게임 속에 들어가는 ‘빙의’ 설정으로 새로운 공포를 유발하는 건데요. 평화롭고 무탈한 세계로 빙의한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흉악한 귀신이 우글거리는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면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겠죠. 독자로서 감상할 땐 재밌을지 모르나, 실제 현실 세계로 삼는 것만은 피하고 싶을 거예요. 위험천만한 작품 속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여 새로운 차원의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야말로 ‘공포 빙의물’의 진짜 매력입니다.
공포물에 빙의한 주인공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칩니다. 주인공의 목표는 분명한데요. 무섭고 끔찍한 소설이나 게임 속에서 무사히 ‘엔딩’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만이 작품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종료할 수 없는
‘생존 게임’ 속으로
그중 한 축이 공포 게임에 빙의하는 로맨스 작품입니다. 공포스런 분위기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라니 언뜻 형용모순 같지만, 오히려 그 장르 불일치가 서사적 재미를 낳기도 합니다. 공포의 수위가 조절되는 효과는 덤이고요.
예를 들면 웹소설 ‘공포 게임 최종 악당에 빙의했다’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이입한 ‘공포 게임’이라는 세계의 장르적 특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로맨스 세계를 기대하고, 로맨스 세계의 문법을 수행함으로써 장르를 바꾸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또 웹소설 ‘공포 게임 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에선 로맨스와 생존이 별개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제시되는데요. 주인공이 갇혀버린 공포 게임이 다름 아닌 남자 주인공의 악몽이라는 설정을 통해, 게임에서 탈출할 방법이 두 사람의 호혜적 관계에 달려있음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주인공은 으스스한 별장이나 음침한 저택에 갇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생존 게임’을 이어나갑니다. 그런 와중에 남자 주인공과의 기묘한 로맨스가 작동하고, 이는 주인공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죠. 쫓고 쫓기는 공포 스릴러에 로맨스와 추리 요소가 섞이며 낯설고 복합적인 재미가 발생하는데요. 바로 그 점에서 요즘 부상하는 ‘로맨스릴러’의 한 갈래로도 평가받고 있어요.
인간의 힘 벗어난
‘괴기 소설’ 속으로
그런가 하면 자기가 빙의한 작품의 규칙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주인공도 있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비범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필이면 존재감도 별로 없고 흔해 빠진 단역에게 빙의하는 식이죠. 괴기·공포물에서 그런 단역은 으레 처참하게 희생 당하기 마련이고요. 그러니 주인공이 맞닥뜨릴 공포가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웹소설 ‘공포소설 속 조연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신과 마수가 우글거리는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소설 속에 별 볼일 없는 조연으로 빙의합니다. 인간이 가장 하찮은 존재로 설정되어 있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인간다운 엔딩’을 향해 나아가는데요. ‘조연’의 운명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괴기물의 장르 규범에 굴복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인간성에 대한 성찰과 재미를 자아냅니다.
이 같은 설정은 판타지 웹소설의 하위 장르인 ‘책빙의물’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책빙의물은 대개 주인공이 ‘원작’의 정해진 스토리를 탈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괴기물’에 빙의하는 이야기는 그 동력을 불안과 공포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두드러집니다.
지금 가장 끌리는
공포의 세계는
공포물이나 괴담은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을 마주하게 합니다. 공포물에 빙의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독자’라는 안전한 자리를 떠나 무시무시한 작품 속 세계로 성큼 걸어들어 가는데요. 엔딩을 향해 가는 인물에게 적극적으로 이입하고 그들의 선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두려움을 극복할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끌리는 공포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 세계에서 여러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엔딩을 향해 나아갈까요? 바로 그 상상으로부터 현실의 우리가 직면한 삶의 역경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자료
안상원. (2020). 한국 웹소설의 ‘책빙의물’의 특성 연구—로맨스판타지 장르를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26(3), 87-120
유인혁. (2020). 한국 웹소설 판타지의 형식적 갱신과 사회적 성찰—책빙의물을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26(1), 7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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