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하라고 구해준 건 아니었는데’, ‘주치의는 할일 다하고 사표 씁니다’, ‘시한부라서 흑막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최강자 남주의 라이벌을 그만두었더니’, ‘불공정 결혼’, ‘남편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까지. 2020년부터 3년간 무려 여섯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였습니다. 심지어 작품을 내는 족족 인기 작품에 등극하며 도합 300만 이상의 누적 독자를 모았고요. 로판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로맨스판타지 세계를 그리는 작가님은 의외로 이공계 출신이라고 하는데요. 더불어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 세계에서 평범함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한번 읽으면 정주행할 수밖에 없는 작품 ‘남편에게 쫓기고 있습니다’(이하 ‘남쫓’)를 쓴 유나진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매일 한 편씩 꾸준히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리디에서 로맨스판타지 웹소설 ‘남편에게 쫓기고 있습니다’를 쓴 유나진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Q. 웹소설 작가가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전공은 글쓰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이공계입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단과대 내 서평 행사에서 운 좋게 순위권에 들어 문화 상품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참가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걸 보고 웹소설 읽기가 취미였던 친한 대학 동기가 제게 웹소설 쓰기를 추천해 줬어요. 실제로 처음 글을 쓸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이 친구에게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습니다.
Q. 정말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세요. 3년간 무려 여섯 개의 작품을 쓰셨어요. 이렇게 꾸준히 다작을 하실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다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2020년 런칭한 첫 작품 ‘청혼하라고 구해준 건 아니었는데’는 19년에 완결시키고 런칭만 좀 늦었습니다. 실제로는 4년 동안 여섯 작품이에요. 수치상으로 계산하면 그냥 하루에 한 편 정도 쓴 셈이에요. 다만 제가 정말 쳇바퀴 도는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루틴대로 자기 전에 매일 한 편씩 쓰는 것이 꾸준히 작품을 내는 비결 아닌 비결인 것 같습니다.
Q. 매일 한 편씩 쓴다고 가볍게 얘기하셨지만 절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딱히 시행착오나 우여곡절을 겪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처음 글 쓸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루틴이에요. 제가 매사에 변화의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평범한 게 제일 좋다, 어제 같은 오늘이 가장 좋다’라는 아주 재미없는 가치관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평범함은 최고의 해피엔딩 로판
불법 악령 사냥꾼이자 1급 현상 수배범 ‘푸른 루비’ 엘로이즈는 스물다섯 살 생일에 죽음을 맞이하는 시한부입니다. 다행히 죽기 직전 시간을 되돌려 이 운명을 피해 갈 기회를 얻는데요. 과거로 돌아간 그녀는 자신을 맹렬히 추적하는 요하네스 공작에게 정체를 숨긴 채 돌연 청혼합니다. 시한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의 돌’을 바로 그가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제목 그대로 1급 현상범 엘로이즈가 남편에게 쫓기게 된 것이죠.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푸른 루비’ 엘로이즈와 일평생 ‘푸른 루비’만을 쫓아온 요하네스 사이에서 가슴 뛰는 추격전, 진실게임 혹은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Q. 사람을 해치는 악령,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 수 있는 ‘시간의 돌’ 등 세계관에 많은 설명을 투자하셨을 정도로 다양한 설정이 나와요.
그전까지는 세계관에 대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글을 추구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전작은 세계관이라는 것이 없다시피 했는데요. 그에 비해 ‘남쫓’은 제가 쓴 글 중 가장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구성된 작품이에요. 전작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어야 하기에 신작마다 이런 모험은 피할 수가 없더라고요.
Q. 여러 설정을 가진 세계관의 시작점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시작은 남녀주인공의 관계였어요. 수배되어 쫓기던 현상범이 자신을 쫓던 추격자를 구하고 서로 사랑에 빠지고 마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어요. 하지만 여주인공이 현상범이라도 정말 나쁜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고요.
엘로이즈가 요하네스를 구하는 것은 1화보다도 더 먼저 구상했던 내용이에요. 그리고 누구에게서 어떻게 구해줄까를 고민하다 ‘악령’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처음 원했던 수배범 설정도 쉽게 넣을 수 있겠더라고요. 악령 퇴치를 주관하는 신전이 불법 악령 사냥꾼을 쫓는다는 식으로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Q. 동시에 이 작품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설정의 회귀물인데요. 회귀물만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결국엔 평범함을 되찾는다는 점이 회귀물의 매력 같아요. 모든 일이 해결된 뒤 다시 시간이 흘러 회귀를 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오면, 그 시점부터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미래를 모르게 되잖아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그 평범함으로의 회귀가 좋더라고요.
Q. 작가님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이란 평범함을 되찾는 것이겠군요. 반대로 두 주인공 요하네스와 엘로이즈가 비범하고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고 설정하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요하네스는 전작의 남주인공들과는 달리 많은 상처를 가진 어두운 인물이에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는 가문 출신에서도 유독 강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황실과도 복잡한 문제로 얽혀있죠. 이런 인물을 다루는 게 참 어려웠어요. ‘와, 너 진짜 인생 피곤하게 산다.’ 속으로 몇 번이나 혀를 찼지요.
엘로이즈는 악령을 퇴치할 수 있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요하네스와 마찬가지로 이 특별함 때문에 불행해져요. 어린 시절부터 능력을 착취당하고, 그 때문에 시한부가 되기까지 하고요. 사실 작가 입장에서는 강한 여주인공을 설정하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재밌어요. 악령 다 때려 부수고 짐승 눈을 총으로 쏴 맞히는 장면은 신나게 쓰기까지 했죠. 하지만 그런 엘로이즈의 삶이 찬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여주인공 엘로이즈가 추구하는 것도 ‘평범함’인데, 그걸 이 작품에서 가장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람들과 가볍게 대화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어휴, 그런 건 흔한 일이에요. 저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그냥 다들 그러고 사는 것 아닌가요?’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삶이요.
만일 이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써야 할 필요가 없어지면, 그 능력도 그다지 가치가 없게 될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고민, 걱정,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겠지요. 평범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주인공들에겐 진정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웹소설로, 또 웹툰으로
Q. 프롤로그가 웹툰으로 공개되었어요. 작가님의 감회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작 과정 내내 ‘예뻐요, 멋있어요, 최고예요’를 반복했어요. 제작하느라 고생하신 PD님과 그림 작가님을 수백 번 찬양한 기억이 납니다.
소설을 쓰다가 진척이 안 나가고 애매해진다 싶을 때 프롤로그 웹툰을 다시 봤습니다. 웹툰 속 요하네스와 엘로이즈의 얼굴을 보고 ‘이렇게 이쁘고 잘생긴 애들이 나왔었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즐겁게 쓸 수 있었어요. 이게 독자님들에게도 ‘남쫓’을 더 즐겁게 볼 수 있는 팁이 될지 모르겠네요!
Q. 꼭 눈여겨 읽으면 좋을 대사가 있을까요? 작가님 스스로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 한 마디만 꼽아주세요.
일평생 너를 쫓으며 살았어, 그러니 이제는 내게 와줘.
악령 사냥꾼 ‘푸른 루비’ 엘로이즈를 쫓던 요하네스가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자리에 왔을 때, 마지막 한 걸음을 와 달라고 부탁하는 대사예요. 끝끝내 엘로이즈 앞에서 을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능력 있는 추적자의 마지막 대사로서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Q. ‘남쫓’을 챙겨 보는 독자님들께 한 마디 남겨주세요.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시간의 돌’을 얻게 되더라도 과거를 바꿀 필요가 없을 만큼 늘 행복한 삶을 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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